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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08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6)
- 2009/03/07 로맹 가리 (4)
- 2007/10/07 자기 앞의 生 * 에밀 아자르 (2)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 Book
- 2009/03/08 01:00
-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인간이 진화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진 못하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불과 1년전의 사진이 촌스러워지고 현재의 모습이 나름 세련된 모습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깔끔한 모습을 비가 오지 않아 쓸 물이 없어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이 올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이제 말로만 듣던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우리의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현명한 인간들은 과학을 기술의 발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에 까지 지구를 위협하고 자연을 짓밟으며 기고만장해졌는지 객관적인 수치를 측정하는데 이용했다. 그결과 우리는 향후 인류가 어느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불안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보고서들과 마주할 수 있다. 인류의 일이지 내 개인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거야 말로 넌센스다.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거 자체를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쁘다고 읍소한다. 뭐.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그런 걱정을 시간 단위, 아니 분단위로 하게 될지도 모르니 하던 생각 쭉 하시면 된다. 늘 하시던 생각들이니 어색해 하실 일은 없겠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냉소적인 반전으로 마무리를 하는 단편들이 주를 이룬다. 순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치 못하는 순수애의 동경들. 하지만 동정적이다. 결국 인간의 절망에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건 같은 인간이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현명하게 이끌 수 있다. 인류의 절망적인 현실을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혹은 외면하는 인간들이 대다수지만 분명 희망은 있다. 때로는 인간에 대한 의지를 비웃고 소름 끼칠 정도로 기만하는 인간들도 있지만 결국 서로를 바라보며 의지하고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순수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어떤 인위적인 요소도 이해하지 못하며 불결해 하는 모습과 절망에 넉다운 되어버린 젊은이들의 오해와 고통스런 죽음을 그린 이야기들을 만나보며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부끄러웠고 절망스러웠고 안타까웠다. 휴양지다 뭐다 해서 '무인도'도 줄어가는 마당에 그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서로에게 고통을 주기보다 희망의 근거가 되자고 하면 무척 공허한 외침일까. 허망하고 거창하고 무엇보다 망상처럼 여겨지니 씁쓸할 뿐이다.
행복과 절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후부터, 그 의미와 실체 또한 추상적이기 이를 데 없지만 절실하게 행복과 마주하기 위해서 절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기심을 아주 기민하게 이용하는 인간이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22세기형 아포리즘도 있지 않은가. 임무를 다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 누을 자리로 돌아오는 새들의 최후가 비참해 보이지 않고 아름답게 보인다. 마지막을 함께한 동료들과 파도에 쓸려나가 넓은 바다 위를 부유하다 하늘을 비상하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물고기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저들의 특별한 최후가 전혀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 역시 새들처럼 세상의 끝에 찾아가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조금씩 그 끝에 다다르는 '운명'이라면 행복할 수 있을까. 지치고 절망적인 불행한 삶이었다 해도 그 마지막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라면.
대단히 냉소적이고 희망보다는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들로 가득한 불행한 이야기들이지만 로맹 가리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희망을 말한다.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들을 비웃거나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애로운 어른의 회초리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순수함을 욕망하지만 기만하기 쉬운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들이 담겨 있다. 과학 발전을 혜택이라 여기며 점점 비극으로 다가가는 인류의 운명을 어찌하면 좋을까. 문명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버리고 타인에 대한 배신과 이기심이 주는 당장의 배부름을 환희라 여기며 부도덕에 물들어가는 인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래도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인간이 가진 사랑과 동물적인 본능이 아닌 이성적인 본능에 의한 현명한 지혜다. 자연이 뿜어내는 한숨과 인간에게 가하는 스케일 큰 투정(환경재앙)을 읽어내는 영민함이다. 결국 희망은 바로 당신, 우리 모두인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와 그의 부인이었던 여배우 '진 세버그'

둘의 나이 차이는 24살 (두 바퀴 띠동갑)

둘의 나이 차이는 24살 (두 바퀴 띠동갑)
얼마 전에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었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 조종사, 소설가 , 외교관,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그의 다양한 이력. 소설 [밑줄 긋는 남자]의 주인공 콩스탕스의 영원한 이상형이었던 남자. 아. 문득 그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구글과 야후를 돌아다니며 요즘 그를 만나고 있다.^^; 분위기 있는 중후한 사진들이 많다. 특히 배우였던 전부인 진 세버그와의 사진들은 하나의 화보처럼 아름답다. 그녀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로 프랑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미국출신 배우였단다. 의문의 실종 뒤 변사체로 발견 된 그녀의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 로맹 가리는 그녀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단다. 1년 뒤 그도 권총 자살.
- 자기 앞의 生 * 에밀 아자르
- Book
- 2007/10/07 23:20
-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그런 모모의 주변에는 모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밀 할아버지,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여러 친구들,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고 모모를 많이 걱정해주는 주변의 사람들. 하지만 그럼에도 모모는 가끔 울적해질 때가 있고 그럴 때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다가 어딘가에 버리면 기분이 좀 나아지곤 했다고 한다. 모모가 살고 있는 환경은 좋은 환경은 아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부모가 있었고 친구들 중에는 마약으로 돈을 버는 친구들도 있고 로자 아주머니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모모의 표현을 빌리자면- 엉덩이로 벌어먹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따뜻한 소설이다. 모모를 걱정해 주는 이웃들이 있었고 못 된 말로 아이들을 나무라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로자 아줌마가 있다. 그리고 모모를 많이 사랑해주었다.
겉으로는 순진한 말을 하지만 모모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모모가 바라보는 삶의 진실이 담겨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같은데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너무 많을 걸 보고 있었다. 사랑받고 싶어하고 관심을 바랐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억누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모모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행복해지려고 마약을 하느니 지금 이대로의 삶을 살겠다고 말하는 열살짜리 아이.
어른들이란 사람들은 아이가 아이다운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그들이 안심할 수 있으니까.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면 것넘는다고 생각하고 경계한다. 그런데 아이가 또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건 또래보다 더 많은 걸 겪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있는 게 아니라 필요이상으로 많은 걸 경험하게 된 거다. 아이가 많은 걸 직접 할 수 밖에 없는 주변환경을 돌아보라. 아이에게 어떤 경계선이 쳐져 있는지. 혹시 주변의 무관심한 환경이 아이 주위에 쳐져있던 경계선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까봐 마음 졸이는 모모는 실제 책의 작가 로맹 가리와 닮은 것 같다. 그가 남긴 수기 형태의 유서를 읽어보면 문단의 기성작가로 남아있어 처음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에밀 아자르라는 작가를 탄생시킨다. 그가 권총 자살한 뒤 출간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읽어보면 기존의 평론가와 문단에 대한 그의 조소와 통쾌함이 닮겨 있었다.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데 아는 체하는 평단이 얼마나 우습고 만만하게 보였을까. 한편으로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아주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남아있는 듯 해서 에밀 아자르로 사는 동안 그의 심경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움과 무관심.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난다면 닫혀진 죽음의 문에 '똑똑' 노크를 하게 될 수도.
혹시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들리면 대답 좀 해주세요. 아니면 문이라도 열어주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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