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에 해당되는 글 5

  1. 2008/11/27 스모크 (Smoke)
  2. 2008/10/09 브루클린 풍자극 * 폴 오스터
  3. 2007/06/24 폐허의 도시 * 폴 오스터 (2)
  4. 2006/06/19 뉴욕 3부작 * 폴 오스터 (6)
  5. 2005/04/13 달의 궁전 * 폴 오스터

스모크 (Sm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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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라는 도시를 생각하면 다양함이 떠오르는데요. 그곳은 소위 뉴요커라 불리는 멋쟁이들만 있을 것 같고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늘 바쁜 시간에 쫓겨 노점에서 파는 칠리핫도그를 길거리에서 한입 베어 먹어도 그 자체로 활력이 도는 것 같고 마놀로블라닉과 지미추의 구두처럼 화려한 구두만 신고 다닐 것만 같아요. <SATC>부터 시작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어글리 베티>처럼 뉴욕의 화려함을 담은 드라마와 영상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작가 폴 오스터가 '뉴욕'을 그리는 방식은 그래서 특별해요. 오스터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뉴욕을 배경으로 하지만 의식하고 읽지 않으면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그곳이 뉴욕인지 금방 잊게 돼요. 우리에게 더이상 뉴욕이라는 도시는 낯선 도시가 아님에도 어쩐지 그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뉴욕'은 낯설기만 하거든요. 그의 작품 속, 뉴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밑그림과 군상들도 매우 다양해서 때로는 밝게, 때로는 우울하게, 그렇지만 인간적인 연민을 담아 그려내죠.

폴 오스터가 각본을 쓴 영화 『스모크』는 뉴욕 브루클린의 시가 상점을 중심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예요. 다섯명의 인물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느슨하게 걸쳐져 있는 듯해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단단해지는데요.『스모크』의 첫번째 인물 폴 벤자민은 직업이 작가예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폴 오스터의 영화 속 모델로 보여져요.) 그는 인물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3년 전, 강도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죠. 흑인소년 라쉬드는 우연히 말려든 강도사건으로 쫓기는 상황이에요. 능청스럽고 수다스럽고 때론 당돌해 보이기도 한 이 녀석은 실은 두려움을 애써 감추기 위한 아이다운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아가며 담배도 피워보지만 그의 능청스러움은 어른들에게는 그저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에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여성인 '루비'는 애꾸눈의 금발미녀예요. 속썩이는 딸 때문에 피츠버그에서 차를 몰고 브루클린으로 온 당찬 어머니죠. 시가 상점의 주인 오기와는 젊은 시절 사연이 좀 있는 여인이에요. 거의 남자들만 나오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정말 여우처럼 행동해요. 언제 눈물을 보여줘야하는지 아는 여우계의 고수라고 해야할까요. 정비공 사이러스는 오래 전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의 왼팔은 그 사고로 갈고리가 달려있지요. 그는 실수를 평생 기억하라고 신께서 자신에게 내린 형벌이라 생각하고 그 후로 오랫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시가상점의 주인 '오기'는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감초같은 인물인데요.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 하고 때로는 고약하게도 보이지만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쓴 소리 한번 제대로 못하는 속마음 따뜻한 중년의 아저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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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아픔을 확인하고 치유하는 영화들은 무척 흔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억지로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려하지 않아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상대의 슬픔에 안타까운 마음을 보이지도 않아요. 속이 상하는 일 때문에 '담배' 한개피 피우려는 친구의 곁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죠. 서로의 얼굴에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을 수 있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훈훈한 장면이었어요. 담배가 참 맛있어 보이던데요. 저래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건가 궁금증이 일더라고요.
 
매일같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구도의 사진 한 컷을 찍는 오기의 말처럼 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전혀 다른 걸지도 몰라요. 어제 피운 말보로 한갑은 오늘 피우는 말보로 한갑과는 전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들에게 '담배'는 비밀을 털어놓을수 있는 친구처럼 늘 옆에 있는 친근한 존재죠. 그들이 짊어진 인생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의 무게도 전혀 다른 것이겠죠.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임산부, 청소년을 막론하고 전부 담배를 피워요. 장면마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나오죠.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바탕 진창 욕을 퍼부은 다음 옆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들의 화해의 방식은 어쩌면 남성들의 방식일지 모르겠네요. 사실 이 영화는 거의 남성적인 영화라고 봐도 좋을 거예요.^^;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인물들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 속 오기의 카메라를 닮았어요. 같은 것처럼 보이는 4000여장의 그 기록사진에 갖는 오기의 특별한 애정처럼요. 이 영화의 날씨를 묻는다면 화창한 봄 날씨같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삶의 버거움이나 외로움도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라면 좋겠어요. 따뜻한 영화예요,『청춘스케치』의 트로이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담배와 커피, 그리고 5달러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도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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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풍자극 * 폴 오스터

폴 오스터를 어렵게 생각하는 그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드디어 발견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그중에서도 누군가에게 권해줄 수 있는 나의 작가의 책을. 이것으로 이 책의 감상을 마칠까 한다.지만 오랜만에 쓰는 감상이니 만큼 살을 좀 붙이자면 <브루클린 풍자극>은 지금까지 읽어 본 오스터의 책 중에 가장 사랑스럽고 온기가 넘치는 포근한 책이다. 책의 표지를 보시라. 심리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노란색 표지다.

사실 책의 시작은 조금 절망적이다. 죽을 장소를 찾아 태어난 곳, 브루클린으로 돌아왔다는 전직 보험판매원 네이선의 이야기. 네이선은 얼마전까지 암을 앓았고 항암치료로 완치됐지만 와이프와는 이혼을 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과는 연락을 끊기 일보직전인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예순의 노인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희망적인 말도 있는데 네이선은 죽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왔다. 하지만 인생이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들의 놀이터가 아닌가. 이제 조금씩 그에게 '행복'이라는 놀라운 선물 보따리들이 하나둘 도착할 예정이다.

죽음을 찾아 브루클린으로 왔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네이선이 생각한 소일거리는 '어리석은 일'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 은퇴노인의 전형인 네이선에게는 모자람 없는 돈이 있지만 하루하루는 무척 단조롭고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를 가장 괴롭힌 건 '외로움'이었다. 처음 그의 행복의 시작은 외조카인 톰을 고서점에서 우연히 만나고부터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톰은 문학도를 꿈꾸던 건실한 청년에서 뚱뚱보 실직자로 변해있었다. 아. 절망스런 인생의 쓴 맛을 또한번 맛본 네이선. 하지만 외로웠기에, 너무너무 외로웠기에 톰과 자주자주 (거의 매일) 만나서 그동안에 톰에게 일어났던 드라마같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물론 이 일들은 고스란히 네이선의 이야기 공책에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톰을 통해 그가 일하는 고서점 사장인 해리 브라이트먼의 또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네이선은 자신에게 일어난 절망적인 현실은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점점 새롭게 알게 된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 관여하게 된다. 먼 발치에서 한 여인을 보며 쿵쾅쿵쾅 뛰는 가슴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조카를 위해 그의 마음 속의 여신을 현실 속의 이웃으로 만들어 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분명히 불행했던 노인은 조금씩,조금씩 주변사람들의 마음 속에 행복을 불어 넣는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의 불행은 참을 수 있어도 마음이 쓰이는 주변인들의 불행과 절망만은 두눈 뜨고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네이선의 자애롭고 따스했던 본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세상은 가끔 공평함을 보여줄 때가 있다. 타인에게 마음을 쓰던, 그리고 그의 남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다른 이를 위해 보냈던 네이선에게도 행복이 찾아든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사랑하는 이에게 받았기에 짜릿했고 무엇보다 값졌던 화해와 용서였다. 그가 얻은 행복이 값지고 빛났던 건 사실 그 행복은 네이선 스스로가 만들어 낸 그가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나 스스로를 멍청한 녀석이라고 한탄할 때가 있는데 그건 정말 스스로가 멍청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질릴 정도로 인생에 대해 투정을 하고 있을 때, 문득 현실을 직시할 때가 있다. 그건 나는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무언가 바뀌기만을 간절히 바라기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다. 어리석다. 스스로는 손 놓고 그저 멍만 때리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인생이 그대로냐고 감히 하늘을 보고 삿대질을 하려 했다니. (ㅋㅋ) 20대의 초반을 조금 우울하게 보내면서, 그리고 그런 날들을 회상하면서 나는 실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스로의 행복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만들어갔던 네이선의 이야기를 읽으며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아직 행복이라는 실체를 보지도 못했으면서 너무 쉽게 행복과 불행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행복이라는 녀석은 어떤 모습일까. 더이상 두 손 놓고 '왜 그대로지'라고 오지 않을 기적은 바라지 않으련다.

1년에 한번 쯤 이기적인 나도 다른 이들의 행복을 맘껏 빌어주는 그날이 다가온다. 그날에는 그냥 아무 이유없이 째려봤던 커플들의 농밀한 애정행각도 자애롭게 미소지으며 넘길 수 있다. 왜? 그날은 '크리스마스'니까. 한가을에 크리스마스 타령을 하는 것은 테마가 '사랑'인 이 책을 읽으며 영화내내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생각났고 그 영화를 생각하니 크리스마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커플들의 공습이 있을 거라는 솔로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내로 나가 사람들을 구경한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흘러 나오는 귀에 익숙한 캐롤과 분주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분위기를 내려는 시내의 그 풍경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마 그런 날에는 모두가 마음 속에 사랑과 행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도 좀 착해지는 것 같아서 커플들에 치일 것을 각오하고 시내로 나간다. 단지 그 따스해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화려한 조명,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 '미소'를 보기 위해서. All you need is love and All I need is you(사실은 money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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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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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폴 오스터의 작품은 <폐허의 도시>를 포함해서 세 편의 책을 접했다. <달의 궁전>은 몽환적인 분위기와 스스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들을 인상적으로 보았고 <뉴욕 3부작>은 쉽게 이해가 안 됐던 인물들의 숨박꼭질 인생사를 만나보았다. <뉴욕 3부작>을 소개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탐정소설 형식의 추리 어쩌구 저쩌구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장치였기에 그 얘기는 빼놓겠다. <폐허의 도시>도 앞의 <뉴욕 3부작>처럼 정말 정이 안 가고 웬만해서는 다음 장을 넘기기가 싫은 소설이었다. 어쩌면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이 안 들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폴 오스터 소설은 거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자꾸 생긴단 말이지. 읽고 싶지는 않은데 또 한번 읽고 싶은 마력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궁시렁궁시렁 책을 읽으면서도 결국에는 끝까지 읽게 된다. 이해를 못  했으면 오기 때문이라도 다시 손에 잡게 된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아리송한 매력. 내가 느끼는 폴 오스터 작품들에 대한 간략적인 소견이다.

<폐허의 도시>의 배경은 그동안 폴 오스터의 작품에서 자주 보았던 배경인 뉴욕이 아닌 그냥 어떤 도시다. 주인공 안나는 그 도시를 취재하러 간 오빠를 찾으러 그 도시로 들어온다. 이름도 없고 어디 붙어있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 도시. 하지만 그 도시는 일단 문명사회라기보다는 이미 망해버린 지옥같은 곳이다. 사람들은 목적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산다. 그러다가 죽고, 새 생명은 태어나지도 않는 종말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는 도시. 그 곳에서 안나는 '당신'에게 보내는 글을 남긴다. 쉽게 말해서 안나의 '폐허의 도시 체험기'라고 하면 될 듯하다.

그렇지만 절대로 인물들의 입에서 이 도시를 비난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은 그냥 살고 있을 뿐이고 상황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들 방식으로 맞춰 산다. 도시의 책임자들을 원망한다던지 다른 도시로의 탈출을 간절하게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살고 본다.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오직 쓰기만 하는 소모적인 도시. 그래서 이곳은 희망이 없다. 책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책이 끝난다. 마치 지금 어딘가에서도 누군가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듯, 그 도시의 삶의 한 단면이 잠깐 일반인에게 공개된 듯한 느낌이다.

또 하나 느꼈던 특징은 물론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이 소설에서도 나오는데 그들의 야비함 정도가 모든 게 갖추어져 있는 이 현실 속에서의 사람들의 야비함 정도와 비슷하다는 거다. 물론 정도가 엽기에 가까운 인물들도 몇명 나오지만 그런 사람들이 어디 여기라고 없겠냐고. 삶의 열악함이 여기보다 더한 곳일텐데도 특별히 추악한 인간들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냥 그 깊이가 비슷했다. 다만 특징이 있다면 모든 게 결국은 끝이 난다는 것. 학문의 연구도 결국 종말을 맞고 이 도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사회봉사도 결국에는 어떤 희망도 없이 끝나버린다.

여러 가정을 통해서 인간의 삶이 어떨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소설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글을 통해서 인간에게 어떠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소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도 있다. 어떤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게 되는지 가정해 보는 소설들, <폐허의 도시>는 그런 환경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사기와 기만, 무능함과 게으름으로 가득 찬 이런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그런 일들에 복수한다 거나 지금보다 더 큰 노력과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그냥 되는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동안 폴 오스터의 작품을 통해 만나봤던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이번에는 인물이 아닌 도시를 통해 보여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폴 아저씨 참 시니컬 하다.

덧, 내용 중에 페르디난드라는 작자가 잡은 X를 산 채로 불에 구워서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꿈에 나왔었다. 자다가 중간에 놀래서 깼다. 읽을 때 좀 으윽~(ㅡㅡ;)했던 장면인데 그게 꿈에 나올줄이야-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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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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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어 본 책을 일 년이 지난 뒤 다시 읽어 본 것 뿐인데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음 읽었을 때 기억에 남은 게 하나도 없었나 보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처음에도 그랬지만 두 번째 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짜증과 낭패감을 안겨주는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소득이 있었다면 이제 이 책에 담긴 줄거리는 절대 잊지 못할 거라는 것과 아주 조금 퍼즐이 맞춰졌다는 거다. 내가 이해하고자 한 건 책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아주 소박한 목표였다. 줄거리라도 이해하자. 그 목표는 어느정도 달성한 듯 싶다. 하지만 ‘뉴욕 3부작’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정말 모르겠다.

‘뉴욕 3부작’은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처음 두 개의 이야기는 읽으면 줄거리 자체는 이해 되겠지만 연관성은 찾기가 어렵다. 마지막 이야기인 <잠겨 있는 방>을 읽어야 비로소 이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어떤 사연이 담긴 얘기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세 이야기는 전개방식이 비슷했다. 쫓는 자, 쫓기는 자, 하지만 쫓는 자의 시각에 이야기는 맞춰졌고 각 단편에서 탐정의 역할을 했던 주인공들 세 명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뿌리는 마지막 이야기인 <잠겨 있는 방>이었다.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었고 앞선 두 이야기는 <잠겨 있는 방>을 모티브로 쓰여진 잠겨 있는 방의 ‘나’가 쓴 소설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혹시라도 읽으실 분들을 위해 가려둔다. 밑에 이어진 내용정리는, 읽는데 고생한 나를 위한 내용정리가 되겠다. 혹,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가능성이 많다.^^;;

내용 정리



뉴욕 3부작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울하고 고독한 책이다. 폴 오스터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책을 읽은 건 조금 후회되는 일이다.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을, 섣부르게 읽었다가는 낭패보기 쉬운 책을 너무 쉽게 집어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폴 오스터의 작품은 매력이 있다. 그의 작품을 이제 두 권째 읽은 거지만 어쩐히 그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너무 안락해 보이고 편해보이기 까지 하다. 처음엔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주인공들이 우연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에 의해 점점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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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 폴 오스터

M.S 포그가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건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나야만하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에핑과 솔로몬 바버, 그 둘과 M.S 포그는 언젠가 꼭 만나야할 운명의 끈으로 묶여있었다.

폴 오스터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어본 ‘달의 궁전’은 읽기 전의 그 설레임만큼 읽고 나서도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이제서야 그의 작품을 읽기시작했다는 게 좀 늦은감이 있지만 첫만남을 좋게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소설에서 달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어떤 것일지 많이 궁금했었다.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은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아마 난 이 구절을 결코 잊지않을 것이다. 작품에 드러나는 달의 의미를 모호하면서도 멋지게 표현한 이 글귀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젊은 시절을 보낸 이 세사람의 일생은 포그라는 인물을 통해 작품에 드러나는데, 그 세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고의적으로 소외시킨다는 점에서 닮아있고 그 셋이 운명의 끈으로 묶여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젊은시절을 보내게 된다. 여기서 책의 내용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면 책을 앞으로 읽을 그 누군가에게 아주 큰 실례가 될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 싶어도 망설여지는 그 내용은 책을 통해 알게되야 이 책을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소설은 줄거리보다는 인물들을 눈여겨봐야 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좀 지루한 느낌을 받았던 건 고백해야겠다. 우선 포그라는 인물이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껴서 포그라는 인물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곱게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놓지 못했던 건 그런 모습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고 아직 등장하지 않은 두 인물의 삶은 또 얼마나 엉망진창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포그는 맛보기에 불과했다. 사실 가장 흥미진진한 인생을 산 사람은 책의 중간에 등장하는 에핑인데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달이 우리의 인생과 닮은 점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달이 갖고 있는 그 변화무쌍한 모습이 종잡을 수 없이 늘 달라지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웠다 중간이었다 아주 밝았다 다시 어두워지는 그 모습이 힘들다가 그저 살만하다가 즐겁다가 다시 지루해지는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지않았나?

나는 마지막 남은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 해변에 서 있었다. –중략- 내가 해안의 굴곡을 바라보고 있을 동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란 둥근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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